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뤄원간 사건 (문단 편집) === 뤄원간 체포 === 그러던 중 1922년 11월 18일, 한밤중에 재정총장 뤄원간과 재정부 고장사장(庫藏司長) 황체렴(黃體濂)이 긴급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이징 경찰총감은 중의원 의장 [[우징롄]]과 부의장 장백렬이 뤄원간을 리위안훙 총통에게 고발하고 총통이 긴급체포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11월 14일, 뤄원간이 국차관단(國借款團)의 대표로 위탁된 양의은행과 체결한 오국차관합동(奥國借款合同)이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중화민국은 과거 청나라부터 [[위안스카이]] 시절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총 410만 파운드의 차관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이에 대한 상환을 거부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출범하자 북양정부는 오스트리아와 다시 차관 상황에 대해 협의하고 있었다. 뤄원간은 오스트리아에 이자를 합쳐 총 577만 7190파운드를 새로운 채표로 교환, 연리 8리(厘)로 쳐서 10년에 걸쳐 상환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국회는 이를 국회를 무시하고 뤄원간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행한 불법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어 중의원은 <뤄원간사판안(査瓣安)>을 채택하고 뤄원간의 죄를 다음과 같이 거론하였다. * 1. 거액의 국가이권을 상실하면서 국회에 제교(堤交)하여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 2. 합동 내용에는 총통의 비준, 국무회의의 통과를 거쳐 첨자(簽字)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사로이 첨자하였다. * 3. 문제의 오국차관은 파리회의에서 패전국인 오스트리아가 승전국인 중국에게 배상하는 형식으로 무효가 되었으므로 새로운 채표(債票)로 교환해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문제의 합동을 첨자한 것은 뤄원간이 오스트리아 차관단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수회(收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회의 증거는 화의은행이 발행한 각각 8만, 3만, 5천 파운드 짜리 수표이다. 특히 8만 파운드 수표에는 재정부의 부인(部印)과 뤄원간의 친필 서명이 있다. 초기 보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모두에게 갚아야 하는 차관으로 알려져 양의원의 체포 요구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고 언론에도 <덕오차관합동>으로 보도되었으나 이후 오국차관합동으로 정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